“...그러니까 내 말은, 왜 그런 사건을 맡냐는 거다.” “에? 그치만... 변호사 선임할 돈도 없다길래...” “그런 사람을 위해 나라에서 변호사를 보내주는 거다.” “아, 아... 그렇지... 그치만 그 사람, 내가 변호사였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세상에, 이 녀석의 바보 같은 사람 좋음엔 손 들었다. 안 그래도 만날 시간 없는데 일할 거리를 하나 더 늘려 오다니. 그리고 그런 녀석을 애인으로 둔 자신까지 처량해지는 미츠루기 레이지였다. “너, 그런 사건들만 맡아서 집세 낼 돈은 있는 거냐.” 순간 나루호도의 어깨가 움찔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 어떻게든 이 달 말까지는... 될 거라고 생각해.” 그러게 돈도 안 되는 사건들만 맡으니까- 라고 길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은 미츠루기였지만, 워낙에 천성이 착한 나루호도를 알기에 곧 포기했다. 뭐라 한다고 그만 둘 성격도 아니었고. 게다가 변호사가 된 이유부터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 재판은 언제부턴데?” “응? 내일 모레부터. 그, 그래도 주말엔 시간 될 테니까!” 그러면서 눈치를 보는 나루호도가 귀여워 보여, 미츠루기는 피식 웃었다. “재판 준비, 도와줄까?” “아냐, 됐어. 나 혼자 해도 충분한 걸.” “...”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인상 펴!” 그렇게나 인상이 험악해졌던 것일까, 멋쩍어 하며 미츠루기는 미러를 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나루호도를 힐끔 쳐다보았다. 얼굴은 창백하고 눈 밑엔 다크 써클, 피부도 거칠어지고 입술도 말라 있다. “...밥은 잘 먹고 있는 건가.” “엣... 시간이 없어서 라면으로 대충...” “잠은?” “...잘 자고 있어. 걱정하지 마, 미츠루기.” “제대로 대답해라, 나루호도.” “에이, 또 검사 버릇 나온다-” 말을 돌리려는 나루호도를 지긋이 노려보자, 나루호도는 우물쭈물 거리다 대답했다. “...3시간 정도 자고 있어... 으, 으앗! 차 부딪혀, 미츠루기-!” 어디서부터 어떻게 화를 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미츠루기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일단 운전하던 차를 한 쪽으로 세운 다음, 속으로 말을 고르던 미츠루기는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 “마요이 양이 스케쥴 관리 해 주지 않는 건가.” “아니, 어느 정도 해 주긴 하는데... 내가 일거리를 늘려오니까...” 나루호도는 또다시 미츠루기의 눈치를 살폈다. “미안, 미츠루기... 화났어?” “화났냐고? 아아, 그래! 내가 화 낼 걸 알면서 너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거지?” “미, 미츠루기...” “왜 그렇게 자신을 혹사시키는 거냐. 왜 자신을 돌보려 하지 않는 거지?” “돌보지 않는다니... 그렇지 않아, 미츠...” “나에겐 네 도움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 따위 중요하지 않아! 나에겐 너만이 소중할 뿐이다!” 미츠루기의 말에 나루호도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래, 미츠루기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구나. 응, 알았어. 이제부턴 나 자신을 좀 더 돌볼 테니까...” 나루호도가 차분히 받아들이자, 미츠루기는 벌컥 화를 낸 것이 좀 미안해졌다. “화 내서 미안했다.” “으응, 나 같아도 화 냈을거야. 다만 미츠루기, 나는...” 나루호도는 또다시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미츠루기가 피고석에 섰을 때의 일도.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돕고 싶었던 거야.” “...알고 있다.” 미츠루기도 알고 있었다. 나루호도가 마치 자선 사업이라도 하듯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보면서, 그는 나루호도가 변호사가 된 이유를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었다. “자, 그럼 빨리 밥 먹으러 가자. 배고파졌어.” 생긋 웃으며 말하는 나루호도에게 아아, 그래- 하고 짧게 대답한 미츠루기는, 오늘에야말로 나루호도를 배불리 먹이겠다고 다짐하며 차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