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운성-쿠라다케] 악몽
한밤중에 그는 자주 악몽을 꾼다. 내가 고교생이 되어 도쿄로 올라와 그와 함께 살게 된 후부터, 그 빈도는 점차 늘어난 것 같다. 그를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는 나이기에, 나는 그 악몽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내가 나오는 꿈이다.
“으으…”
헛소리 한 마디 하는 법 없이,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그저 울기만 한다. 입을 열었다간 해선 안 될 말이라도 나올 것 같아서인지, 그는 이를 악문 채 희미한 신음소리만 내뱉는다. 물론 나는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에, 그가 악몽을 꾸고 있을 때면 다소 거칠게 그를 흔들어 깨운다.
“다케오… 다케오!”
내가 깨우면 그는 헉 하고 숨을 들이키면서, 눈을 떠 나를 바라보고는 떨리는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더듬어 만져본다. 그의 눈 앞에 있는 내가 환영인지 진짜인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며 나를 확인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쉼 없이 악몽을 꾼 그를 달랜다. 왜냐하면 그가 계속 울고 있기 때문에.
“쉬잇, 다케오. 난 여기 있어. 네 옆에 있어. 그러니까 울지 마. 안심해. 난 죽지 않았어.”
“넌 내가 죽였어…”
꺼질 것 같은 잠긴 목소리로, 그가 나를 보며 그렇게 말한다.
“아니야, 난 죽지 않았어. 이렇게 네 곁으로 다시 돌아왔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가 나를 확인할 때까지. 그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쿠라키…!”
그가 내 목 뒤로 손을 뻗어 나를 끌어안으며 흐느낀다. 차마 큰 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몇 번이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그렇게 운다.
다케오는 아직도… ‘그 때’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거다. 그 자신의 손으로, 이 나를 찔렀던 것을.
“…바보.”
겨우 잠든 다케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이렇게 너의 옆에 있다고 하는데도.
‘그 날’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더욱 심한 악몽에 시달리는 듯 했다.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다케오의 모습에, 난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날’ 그와 함께 이즈모로 향했다. 아니, 끌고 갔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
“여기도 많이 변했네.”
“…….”
“왜 그래? 다케오. 얼굴이 안 좋아.”
“쿠라키…”
그가 내 팔을 꽉 붙잡았다.
“왜? 두려워? 또 다시 내가 네 앞에서 사라질까봐?”
다케오는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본다. 그의 얼굴에 담겨 있는, 불안의 그림자.
내 팔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풀어, 그 손등에 입을 맞춘다.
“난 두 번 다시 널 혼자 두고 가지 않아. 이곳에서, 약속한다.”
기뻐하는 듯, 슬퍼하는 듯, 그의 얼굴은 미묘했다.
“너도 할 말이 있지 않아?”
“…….”
그는 악몽을 꾸면서 그랬듯이, 지금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인다.
“말해 봐, 다케오. 네가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없어.”
그 말에 그는 고개를 번쩍 들어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응, 나랑 헤어지기 싫어하는 것에는 만족했다.
“……그, 때. 너를 찔… 러서, 정말……”
말하는 것조차 괴로운 것이리라. 그의 말이 띄엄띄엄 끊길 듯 이어진다.
“미… 미안. 어쩔 수 없었다곤 해도… 내가, 너를. 내가 너를…!”
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흘러 넘쳤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그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내 품에 안긴 채 그는 드디어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울면서 말하느라 분명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그는 나에게 용서를 비는 듯한 말을 했다. 한참 후에야 그는 울음을 그쳤고, 나는 그동안 그를 계속 껴안고 있었다. 그래, 이제 됐다.
내 품 안에서 작은 새처럼 조그맣게 떨면서 숨을 쉬고 있는 다케오에게, 나는 진심을 담아 속삭였다.
“좋아한다, 다케오.”
“쿠라키…”
“넌 날 찔렀어. 하지만 네가 날 구원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부정하려는 그의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나는 재빨리 뒷말을 이었다.
“그리고 넌 나를 구원함으로써 이 세상을 구원했다. 네 눈 앞에 있는 나와, 이 이즈모는, 네가 구원한 거야.”
그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무녀로서가 아니라, 인간 후즈치 쿠라키로서 말한다. 네가 좋아, 다케오. 너를 원한다.”
“나, 나도…”
“응?”
“나도 네가 좋아… 하지만……”
그의 망설임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너를 용서할게. 나의 죄를 네가 용서해 주었듯이, 나도 너의 죄를 용서해 줄게. 거부하려 하지 마! 너의 죄는 나 때문에 비롯된 거니까, 너를 용서하는 건 나를 용서하는 것도 돼. 너는 나를 용서해 주지 않을 생각이야?”
“아니야! 넌 잘못한 게 없어, 쿠라키!”
“그렇다면 너 또한 마찬가지다! 다케오!”
“아아… 아아!!”
그는 나를 마주 안고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제 좀 진정됐어?”
“응.”
그는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네가 날 구원한 건 사실이야. 내가 널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고. 잊지 마.”
“…응.”
“자, 그럼 가자. 유카랑 코가 본가에서 기다리고 있을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그와 본가로 향하기 전에, 다시 한번 눈 앞의 전경을 바라본다. 거대한 념이 있던 자리. 결계가 있던 곳. 그 날, 내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라졌던 날…
“쿠라키.”
“응?”
나와 손을 잡은 채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다케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고마워.”
다케오는 그 이상 뭐라 덧붙이지 않았지만, 나는 ‘고마워’ 그 한마디로 다케오가 말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아아.”
미소를 지으며 나는 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놓고 싶지 않은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