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해 봤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기억도 아득했다.
사람의 온정이 그리워 무작정 몸을 팔아보기도 했지만 누구 하나 자신의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뒷골목의 어둠에 사는 존재였다.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이런 처지가 됐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부모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매일 맞거나, 몸을 유린당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인가 갑자기 버려진 이후로는, 그저 되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하루 먹고 살 돈만 주면, 먹을 것과 잠잘 곳만 주면 무슨 일이건 가리지 않고 했다.
그리고 그 날은 비가 내렸다.
긴파치는 더러운 뒷골목에서 돈을 받고 윤간을 당한 후였다. 아마 비가 오지 않았다면 그대로 몇 차례 더 당했을 것이었다. 긴파치는 더러워진 몸을 추스를 생각도 않고 멍하니 쓰레기통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골목 구석에 있는 가로등을 등지고 앉아 있기에 거리에서는 이쪽을 봐도 긴파치를 쉽게 발견할 수 없을 것이었다. 뭐, 그런 걸 계산하고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빗줄기는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고 골목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왜 갑자기 비가 오고 난리야."
"그래도 담임이 우산 빌려줘서 살았다, 야."
"빌려주려면 두 개 줄 것이지 왜 하나만 줘? 다 큰 남정네 둘이 한 우산이라니..."
"새끼 말 많기는. 너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내일 담임한테 우산 돌려줄 때 존나 부끄러워 할 거잖아."
"아니거든?! 너……"
긴파치는 두 학생이 툭탁거리며 싸우는 걸 듣고 자기도 모르게 후,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고개를 들어 거리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 대화를 나눈 학생들은 이미 지나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아련하게 무언가가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나도…
나도, 저런 학생들과 함께 하는 교사가 될 수 있을까?
교사가 되어 자신의 삶을 크게 바꾸려는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문득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긴파치는 교사가 되어 있었다.
애당초 배운 것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많은 힘이 들었다. 그나마 제일 쉬울 것 같은 국어를 골랐는데도 어디가 어떻게 중요한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수업은 난장판, 소위 범생이라는 것들은 수업을 제대로 하라며 닦달해 대고 소위 날라리라는 것들은 땡땡이 치고 사고 내기 마련이었다. 솔직히 이거고 저거고 다 귀찮았다. 그냥 대충 알아서 하면 안 되나? 왜 일일이 자기한테 와서 난리인지. 그런데.
그런데, 귀찮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안에서 전혀 의외의 생각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언제부터 자란 감정인지는 자기 자신도 몰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가르치는 반 아이들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것은 그 옛날, 자신이 더러운 뒷골목이 쓰러져 앉아 있을 때 지나갔던 두 학생에 대한 마음과 비슷했다. 순수하고 귀여운, 그래봤자 아이인 녀석들. 함께 있고 싶은 녀석들. 함께 있으면 자신이 더럽고 힘들다는 걸 잊을 수 있게 해 줄 것 같은 녀석들.
그래서 긴파치는 3학년 Z반의 아이들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선생님 따위 나가 죽으라고 말하는 녀석들이 단체사진 찍을 때만 되면 자신의 곁으로 하나 둘씩 모여드는 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병아리인가 오리인가, 하여튼 둘 중 하나랑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여름날 밤, 자신을 알아보고 히죽 웃으며 다가오는 뒷골목의 '손님'들이 나타난 날, 긴파치의 안에 있던 다른 목소리가 얘기했다.
[넌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
그런가? 역시 그런가? 나 같은 건 역시 남을 가르칠 수 없는 건가? 난 아직도 이렇게 맞아야 하고, 몸을 대 줘야 하는 건가?
개처럼 질질 끌려 가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힌 순간, 긴파치는 자신이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눈물이 콧등을 지나 얼굴 반대쪽으로 흘러 내렸기 때문이었다. 비스듬하게 썼던 안경은 이미 튕겨져 나갔다. 싸구려 백의가 찢겨 나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긴파치의 귀를 울렸다.
싫어. 싫다. 이제 이런 건 싫다. 그래, 솔직히 인정하자. 난 달라지고 싶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찾아 주워 쓰고 고개를 들자 자기 발밑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손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죽진 않은 모양이다. 긴파치는 저도 모르게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 자신이 그래도 살인자가 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음을 알았다.
그 순간 긴파치는 자신이 매우 비참해졌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잠시 멍하니 서 있던 긴파치는 발걸음을 뗐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랐다. 무작정 앞을 향해 비틀비틀 걸었다. 어느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쯤 걸은 걸까? 어디에 있는 걸까? 긴파치는 흐린 눈으로 발밑만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빛을 바라볼 엄두 따윈 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현실에 대한 분노가 뒤엉켜 그대로 토악질로 나왔다. 어두침침한 전신주 아래에서 긴파치는 한참을 쏟아냈다. 나도 이런 존재인 걸까? 사회에서 나는 이런 더러운, 정체를 모르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 건가?
어느 정도 토악질을 멈추고 힘겹게 입가를 닦던 긴파치는,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되돌아 본 순간 차갑게 경직되어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서, 선생님...?"
반장 녀석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꺼져."
죽고 싶었다. 변명할 힘도, 대꾸할 힘도 없으니까 아무 것도 묻지 말았으면 좋겠다. 못 본 척 하고 빨리 갔으면. 아니, 그냥 내가 이대로 없어졌으면 좋겠다. 이런 모습 보이기 싫은데. 싫은데...
수치와 혐오가 또 다시 긴파치를 구역질 나게 했다. 하지만 이미 다 쏟아내고 묽은 액밖에 나오지 않았다. 뭐야, 이제 끝인가?
뒤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충격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걸까? 반장 녀석은 순딩이니까.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그럴 녀석들이 아닌데... 하고 생각한 순간, 누군가가 강하게 자신을 확 일으켜 세웠다.
나동그라져 있는 우산이 보이고, 자신의 앞에 있는 신파치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게 보였다. 솔직히 좀 놀랐다. 긴파치의 팔을 꽉 붙잡은 신파치는 작게 떨고 있었다.
"선생님, 집… 어디에요?"
중간에 목이 메었는지 신파치는 한 박자 끊고 물었다. 멍하니 서 있던 아이들이 달려오더니 신파치를 도와 긴파치를 일으켜 세우면서 말했다.
"우리한텐 싸우지 말라 그래놓고 선생님이 싸우고 다니면 어떡합니까?"
"이러고 비 맞다가 감기 걸려서 수업 안 하려고 하는거다, 해."
"내일 조회부터 땡땡이치려는 거 아냐? 할 수 없군. 내가 히지카타를 처치할 테니까 안심하고 나와요, 선생님."
"거기서 왜 내가 나와?!"
"곧 있으면 체육제인데 선생님이 안 나와서는 곤란해요. 신쨩, 어서 선생님을 모시자."
아이들의 얼굴 보는게 무서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기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아이들이 울 것만 같았다. 특히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신파치 녀석이.
그래서 긴파치는 잠자코 신파치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신파치네 집에 도착해 더러워진 몸을 씻고 상처를 치료한 후 노곤해진 몸을 이불에 뉘였다. 닫힌 문 너머로 아이들이 작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진 모르지만 안경 니가 잘 돌봐드려라."
"…얼른 가시죠?"
"나도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갈까, 해?"
"됐어, 카구라쨩. 우리 집 밥 그만 먹고 가."
"아무래도 선생님 내일 감기 걸릴 것 같으니 반 애들 데리고 문병 오도록 하지."
"히지카타씨의 문병도 포함해서요."
고릴라의 말에 맞장구치는 오키타의 목소리와 함께 철컥하는 소리가 났다.
"너 그걸로 날 쏠 생각은 그만둬라."
"남의 집에서 싸우지 말고 빨리 꺼져주실래요?"
오타에가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독설을 하는 게 안 봐도 상상이 됐다.
정말로, 정말로 사랑스러운 녀석들.
너희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이 선생님은 선생님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 녀석들아.
긴파치는 슬며시 미소를 띠우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비가 오는 여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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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06
신파치가 반장이라는 설정은 창작. 3Z에서는 누가 반장인지 모르겠음...